[한경·네이버 FARM] "돼지를 마리당 아파트 안방만한 공간서 키웁니다" 30대 귀농 신혼부부의 자연목장 도전기

입력 2017-11-16 16:26   수정 2017-11-16 16:39



‘단평리 00번지 산꼭대기.’ 충북 음성군에 있는 ‘자연목장’을 찾아가기 위해 위치를 물어보자 이연재 대표가 적어준 주소다. 복숭아의 고장 감곡면 산골. 끝없이 이어지는 복숭아 과수원을 지나 야산으로 접어들었다. 몇분간 달렸을까, 산꼭대기에 도착했다.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이곳에서 흑돼지를 키우는 장훈(38)·이연재(37) 부부의 반가운 미소가 보였다.

자연목장은 흑돼지 50마리를 키우는 작은 농장이다. 일반 양돈농가가 대부분 1000~5000마리를 키우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산계에서 자연목장을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남다른 사육방식과 환경 때문이다. 장 대표는 “50마리의 돼지들은 661㎡(200평) 규모의 축사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자란다”고 설명했다. 한마리당 4평(최근 32평형 아파트의 안방 크기)의 공간이 있는 셈인데, 4평이면 작은 원룸 크기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사육 틀은 아예 설치하지 않았다.

먹이도 일반 사료가 아니다. 직접 재배한 채소와 과일, 산에서 뜯어온 풀을 주로 주고 일반 사료는 발효시켜서 일부만 준다. ‘동물복지 농장’이라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부부가 이런 농장을 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또 30대에 이른 귀농을 단행한 이유는 뭘까. 이 대표는 “서울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할 때쯤 본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인생을 바꿔놨다”고 말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귀농을 결심한 젊은 사진가

이 대표는 사진가였다. 서울에서 사진 스튜디오 일을 했다. 좋아하는 전공을 택했고 전공을 살려 취업한 운 좋은 케이스였지만 행복한 삶에 대한 갈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장 대표와도 이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던 중 이 대표는 이른바 ‘공장식 축산’에 대한 다큐멘터리 한편을 보게됐다. “충격이었어요. 자극적인 장면 위주로 편집되기도 했겠지만 앉았다 일어날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 갇힌 상태로 키워지는 가축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할까? 고기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더라고요.”


이 대표는 채식주의자가 될까 생각했다. 하지만 채소에 대해 공부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채소 소믈리에 과정을 수강하면서 ‘채소는 살아있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아, 우리가 먹는 건 결국엔 살아있는 생명이구나’라는 일종의 깨달음이 마음 속에 들어왔어요. 고기 대신 채소만 먹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대표는 채식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제대로 된 사육을 해보자’는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했다. 이 대표는 “채식은 개인적인 거지만 생명 존중 관점의 고기를 생산해 여러 사람들과 나누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말했다. 장 대표도 흔쾌히 동의했다.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귀농이 갑자기 성큼 다가왔어요.”

◆3년간의 귀농 준비…시골에 꾸린 신혼집

두 사람은 귀농 결심을 한 후 3년간 귀농 준비를 했다. 이 대표는 파주와 평창 등 자연 양돈을 하는 농가를 찾아가 노하우를 배우고, 흑돼지와 관련된 품종 강의도 들었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 복원한 토종 흑돼지를 키우기로 결심한 것도 이 시기다. “8개월간 키워야 70kg이 되는 토종 흑돼지는 4.5개월만에 110kg까지 자라 도축되는 일반 돼지에 비해 생산성은 낮지만 우리나라에는 토종돼지가 자라는 게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이 대표가 귀농 교육에 집중하는 동안 장 대표는 함께 다니던 사진 스튜디오에 계속 다니며 재정적인 뒷받침을 했다. 주중엔 직장에서 일하고 주말을 활용해 시골의 땅을 일궜다. 이 대표는 “귀농 결심 후 무작정 직장을 그만두는 것보다는 한 사람이 일을 하면서 위험 부담을 줄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3년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두 사람은 충북 음성에 신혼집을 꾸렸다. 이 대표의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축사 한 동을 받아 본격적인 양돈업을 시작했다.


◆복숭아 먹는 흑돼지

자연목장에서는 돼지와 함께 80여 그루의 복숭아 나무를 키운다. 부부가 먹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열매는 돼지들이 먹는다. 산에서 자라는 청치, 쌀겨, 유황, 쑥, 망초, 아카시아, 호박, 마 등 20여가지의 채소류도 돼지들의 몫이다. 이 대표는 “유기농으로 재배한 채소를 주고, 돼지들이 배출한 분뇨를 활용해 다시 채소를 재배하는 유기농 자연순환농법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다양한 먹이를 주다보니 재미있는 일도 생긴다고 말했다. “다양한 먹이를 주다보면 돼지들도 각자 좋아하는 게 있더라고요. 복숭아, 호박 등 단맛이 나는 걸 대부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설사를 하는 등 아플 때는 풀을 위주로 먹고요. 일반적으로 독초로 분류되는 것들을 먹어서 자연 치유를 하는 돼지도 있더라고요.”

자연에서 유래한 것을 먹이로 주기 때문에 냄새가 안나는 것도 자연목장의 특징이다. 장 대표는 “축사에서 냄새가 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돼지들이 일반 사료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발효사료나 풀은 소화가 잘되기 때문에 분뇨에서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돼지들의 이빨을 빼거나, 꼬리를 자르는 일도 자연목장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일반적으로 돼지농가에서는 꼬리를 깨물며 싸우는 것을 막기 위해 이빨과 꼬리를 잘라낸다. 이 대표는 “초반에 몇번 싸우고나면 서열이 정해져서 이후엔 싸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매월 마지막주 여는 도르리 잔치

돼지는 한달에 한번씩 ‘도르리’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한다. 도르리란 ‘여러 사람이 음식을 차례로 돌려가며 함께 먹는다’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이 대표는 “옛날에는 돼지를 한마리 잡으면 온 마을이 잔치를 했다”며 “여기에서 착안해 돼지를 잡아 많은 사람들과 나눈다는 의미로 도르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자연목장에서는 매월 마지막주 6마리의 돼지를 도축한다. 부위별로 팔지 않고 구이용, 찌개용, 볶음용으로 나누어 각각 600g씩 총 3근을 5만원에 판다. 모든 부위를 판매하기 위한 방식이다. 이중 4마리 분량은 SNS를 통해 예약이 완료되고 남은 것은 양평 문호리에서 열리는 ‘리버마켓’에서 판매된다. 1마리를 도축하면 14세트쯤 나온다고 하니 월매출은 420만원인 셈이다.

이 대표는 “돈을 벌려면 가격을 올려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좋은 고기가 돈 많은 사람의 전유물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돈을 많이 벌 생각이면 돼지를 키우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추가로 해야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맛은 어떨까. 장 대표는 흑돼지 특유의 쫄깃쫄깃함을 장점으로 꼽았다. 풀과 과일을 먹여 키워서인지 누린내도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한다. 비계가 두껍게 나오는 것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린다는 설명이다.


◆동물복지 인증 못받아요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에서, 풀과 채소류를 먹여 키우는 자연목장은 ‘동물복지 농장’이 아니다. 이 대표는 “동물복지 인증은 받을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소독장 등 시설을 갖추고 풀 사료 등을 규격화해야하는데 그 조건을 맞출 생각이 없단다.

이 대표는 “20여가지 풀과 채소류를 주는 대신 정해진 몇가지 풀 종류만 주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 대표도 “지금의 동물복지 인증제도는 일반 양돈업자들이 동물복지 쪽으로 한걸음 다가가는 것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오히려 소규모로 완전 자연양돈을 하는 농가들이 인증을 받기는 더 어려운 구조”라고 덧붙였다.

부부의 목표는 돼지들이 풀밭에서 뛰노는 것이라고 한다. 자연목장 앞쪽에는 초지가 조성돼 있다. 하지만 축사를 풀밭까지 확장하는 것은 위법이다. 장 대표는 “축사를 확대하거나 신설하는 허가를 받아야하는데 축사가 혐오시설로 분류돼있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며 “돼지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하는 경우에 좀 더 유연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조심스럽게 일반 양돈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비판적인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 대표는 오히려 “양돈업자들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결국은 그렇게 생산되는 고기를 소비자들이 먹어주니까 양돈업자들이 그렇게 생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기를 그렇게 많이 먹는데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에서 방법이 있나요. 최대한 좁은 곳에서 많은 양을 생산하는 방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죠. 소비가 변하지 않으면 생산은 변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런 생명을 존중하는 축산에 대해 소비자들이 많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희 같은 농가들이 분명히 늘어날 겁니다.”

음성=FARM 에디터 강진규

전문은 ☞ blog.naver.com/nong-up/22113291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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